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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들의 '붓의 투쟁'…"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아십니까" <서울경제신문, 2019.01.29>
      • 작성일2019/02/01 13:14
      • 조회 682

      선비들의 '붓의 투쟁'…"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아십니까"


      29일 성균관에서 '유림 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발기인 대회
      파리평화회의에 장서 보내 일제 부당성 꾸짖고 독립 정당성 설파
      의병투쟁했던 선비들 외교투쟁도 병행..독립운동사에서 큰 족적
      김영근 성균관장 "유림들의 독립 투쟁사 잘 안 알려져 안타까워"
       
      선비들의 '붓의 투쟁'…'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아십니까'
      29일 서울 명륜동 유림회관에서 열린 ‘유림 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발기인 대회에서 김영근 성균관장(왼쪽에서 8번째)을 비롯한 유림 대표와 독립지사 후손들이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성균관
       
      “우리는 차라리 자진하여 죽을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유림들은 프랑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파리장서(巴里長書)에서 강력한 독립 의지를 나타냈다. ‘붓의 투쟁’으로 불리는 ‘한국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韓國儒林 巴里長書 獨立運動)’은 유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결산하는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에 2,674자의 장서를 보내는 등 국내·외에 일제 식민통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촉구한 독립투쟁을 일컫는다.  

      성균관은 29일 서울 명륜동 유림회관에서 전국 유림대표와 파리장서 독립운동가 후손 등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유림 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발기인 대회를 열고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알려 나가는데 앞장서기로 결의했다.  

      ‘유림 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추진위원장’을 맡은 김영근 성균관장은 “올해가 3.1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사실은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유림의 독립항쟁인 파리장서독립운동이 똑같은 시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많지 않다”며 “파리장서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재조명해 선비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남북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병투쟁은 물론 3.1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뿌리인 신흥무관학교 등 일련의 독립운동사에서 선비들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게 성균관의 설명이다.
       
      선비들의 '붓의 투쟁'…'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아십니까'
      29일 서울 명륜동 유림회관에서 열린 ‘유림 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발기인 대회에서 유림 대표와 독립지사 후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성균관
       
      선비들의 '붓의 투쟁'…'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아십니까'
      29일 서울 명륜동 유림회관에서 열린 ‘유림 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발기인 대회에서 김영근 성균관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성균관

      실제 유림들은 파리장서에서 일본이 국제적으로 한민족의 독립능력 부족을 주장하고, 친일파들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제출한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반박했다. 유림들은 또 3.1독립운동을 의연하게 소개한 뒤 “삼천리 강토와 이천만 인민과 사천년여의 역사를 지니고 어찌 남의 나라의 대치(代治)를 바라리요. 대치는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뿐”이라며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함을 꾸짖었다. 일제가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해 악랄하게 벌이던 무단 식민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것이다.  
       
      학계에서는 파리장서가 3·1운동의 독립선언서보다 더욱 선명하게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나타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제시대 참 지식인들이 독립 국가의 꿈을 담아 강대국들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던 파리장서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장서 독립운동에는 을사의병 등 의병투쟁을 주도했던 독립지사들을 비롯해 전국의 명망있는 유림 대표 137명이 목숨을 걸고 참여했다. 유림 대표들은 심산 김창숙 선생을 파리평화회의에 파견했는데, 심산은 1919년 3월 말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파리장서를 짚신으로 엮어서 기차를 타고 중국 상하이로 간 뒤 영어, 중국어, 불어, 독어로 번역해 수만부씩 인쇄하고, 이미 파리에서 활동 중이던 김규식 선생 등 파리평화회의 대표단에게 현지에서 배포하도록 우송했다. 또한 파리장서를 국내의 향교 등 주요기관과 중국의 열방 외교사절과 요인들, 해외 거주 한인동포들에게 발송하였다.
       
      선비들의 '붓의 투쟁'…'유림 파리장서 독립운동을 아십니까'
      유림 파리장서 독립항쟁에 참여한 137인의 선비 명단. /자료=국역 송천집(松川 고예진 선생 문집)

      앞서 유림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주도로 1919년 1월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해 전후 세계질서 재편을 위한 파리평화회의가 개최(1919년 6월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하며 마무리)되는 것을 계기로 전 세계에 독립을 호소하기로 하고 1919년 1~2월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이때 독살(추정)로 갑자기 숨진 고종의 국장일인 3월 1일을 기점으로 수개월동안 전국적으로 각계각층과 남녀노소가 참여한 항일 만세 독립운동(3·1운동 과정에서 7,509명이 살해됨)이 불꽃처럼 일어난다. 이때 유림들은 억압적인 폭력과 수탈로 상징되는 일제 무단 통치의 참상을 폭로하고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촉구하는 파리장서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한다.

      손성모 원임 경남향교재단 이사장은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사후에 엄청난 검거선풍이 일고 왜경의 집요한 강압과 회유책이 있었지만 단 한 사람의 변절자도 나오지 않았다”며 “3.1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대다수가 유림이었고, 대열의 선두에서 돌진하다가 왜경의 총칼에 죽거나 다친 사람도 유교 신봉자가 다수였다”고 설명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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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E85MW1YP